'저자'라는 인간을 항상 신뢰할 수 없는 탓이다.
지지적 무장을 단단히
또한 쉽지 않다. 결국 독자는 홀로 본문과 맞닥뜨려야 하는 탓이다.
인쇄된 글이 갖는 순차적이고 옮기기 쉬운 특성이, 월터 옹이 말한 '지식의 분석적 처리'를 조장한다는 뜻한다. (88p)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얼굴 모습이 이미지로 떠오르기 십상일 것이다. 반면, 이들이 쓴 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문자 중심 문화 -> 이미지 중심 문화 (104p)
미국인의 종교적 열정이 대단한 활력을 불러일으켰다는 페리밀러의 주장 (107p)
설명의 시대 the Age of Exposition
인쇄술에 의해 확장
응답을 지체해도 관대하다
쇼비즈니스 시대 the Age of Business (108p)
자기 나름대로의 정의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문자시대 사람들에겐 생소한 다른 종류의 대화거리content (111p)
전신으로 전국이 '하나의 이웃' 으로 바뀐 듯하지만, 실은 서로에 대해 피상적인 사실밖에 모르는 낯선 사람들로 이루어진 괴상한 이웃이었다. (114p)
전신으로 인해 삶과 무관한 정보가 도처에 흘러 넘쳐 '정보 대비 행동비율'이 극적으로 낮아져버렸다. (115p)
당신이 품고 있는 폭넓은 의견을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불만족스럽다. 심지어, 투표란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자들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피난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최후의 피난처는 여론조사원에게 의견을 전해주는 것이다. 조사원은 메마른 질문으로 의견을 묻고는, 유사한 의견과 무더기로 묶어 또다른 토막 뉴스(이밖에 쓸 데가 있는가?)로 개조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 모두는 무기력의 심각한 악순환을 마주한다. (116p)
'헤드라인 뉴스' 라는 신종 언어 (118p)
낯선 사람들끼리 모인 의미없이 북적대는 이웃과, 모든 것이 조각난 단절된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119p)
시각적 경험을 복제
사진이라는 메타포는 두 가지 의사소통 양식(보는 것과 읽는 것) (120p)
사진으로만 보이지 않는 것, 접근하기 어려운 것, 내적인 것, 추상적인 것은 다룰 수 없다.
"그림은 인식의 대상이고 글은 이해의 대상이다" (121p)
사실을 함축
손택의 관찰대로 제대로 된 해석은 우리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122p)
언어는 순차적인 서술방식으로 표현할 경우에만 뜻이 통한다.
사진의 경우에는 전후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기에 (123p)
사진의 세계에는 시작과 과정, 종착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니얼 부어스틱 이미지와 환상 The Image (124p)
믿음의 기초는 읽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 되어버렸다.
"단절되어 조각난 이 모든 (개개의) 사실들을 갖고 무엇을 해야 하나?"
의사-사건 pseudo event
의사-상황 pseudo context (127p)
우리 모두는 허공에 성城을 쌓는다. 문제는 우리가 그 성에서 살고자 할 때 생긴다.
20세가 초의 의사소통 매체로 인해 삐까부 세상 peek-a-boo world이 출현 (129p)
텔레비전은 언어학자 롤랑 바르뜨가 정의한 '신화'의 지위에도 올랐다.
충분히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당연시하는 통념을 뜻한다.
우리의 의식세계 깊숙이 내재(131p)
우리의 문화는 이제 텔레비전의 인식론에 거의 다 길들여졌다 (133p)
테크놀로지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면, 잠재력이 봉쇄되어 기술의 확산이나 사회적 여파를 최소한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139p)
텔레비전에서 온갖 볼거리를 접하기 떄문에,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감정적인 만족을 목표
현재 텔레비전 상업광고에 나오는 장면이 세계 최고의 사진작품 (141p)
음악을 이용하는 것은 전형적인 극장식 장치 (143p)
진행자인 카플은 팬들의 이목을 의식해서 그 쇼를 계속 진행시켜야 한다는 부담 (146p)
시각적 세계에는 생각의 여지가 거의 없다.
텔레비전은 볼거리를 요구한다.
지식보다는 유행이나 흥행
모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추구하는 목표, 즉 성찰이 아닌 박수갈채였다. (147p)
텔레비전은 모든 종류의 담론형태를 포괄한다. 정부정책이나 최근의 과학적 발전상을 알기 위해 극장에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경기 결과나 날씨, 엊그제 살인사건 소식을 알려고 음반을 사는 사람도 없다. 이제는 더이상 연속극이나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들으려고 라디오를 켜는 사람도 없다(텔레비전이 가까이 있으면). (149p)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강한 인상을 심는 데' (156p)
진실을 말하고 있는데도 거짓말쟁이처럼 보일 수 있으며, 더 심각하게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도 진실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163p)
1920년에 윌터 리프먼은 "거짓을 간파하는 수단이 없는 사회에는 자유도 없다"
거짓을 알게 되면 국민들이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으리라고 리프먼이 확신했다는 뜻이다. (171p)
백악관 담당기자는 얼마든지 거짓말을 드러낼 능력을 가졌기에, 진실을 제대로 알려 격양된 여론을 조성하기도 어렵지 않다.
"재미가 없단 말이야." (172p)
모순이 성립하려면 연속적이고 일관된 상황에서 진술과 사건이 상호 연관된 상태에서 파악해야 한다. 상황이 사라지거나 단절되면 모순도 소멸한다 (173p)
일관성을 기준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모조리 상실해 버렸다.
소위 무상황의 상황 the context of nocontext (174p)
공적 정보를 인식하는 우리의 사고체계를 텔레비전이 대체해버린다는 뜻이다. (175p)
"우리는 신문을 만들 떄 상을 받고자 하는 차원에서 기사를 기획하고자 연연해하지 않는다. 부정을 제대로 폭로한 단락이라고 고 해서 독자가 상을 주지는 않는다."(176p)
무엇보다도 라디오는 이성적이고 복잡한 언어를 전달하는 데 아주 적격이다.
네안데르탈인 (177p)
대체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상실했을까? 어쩌면 대답은 이렇지 않을까"? 교육에 관한 중요한 모든 것. (184p)
텔레비전 화면 자체에는 세속주의적 심리상태로 이끄는 강력한 편향성이 내포되어 있다.
통속적인 것들로 흠먹 물들고,
재창조하기란 어렵다. (187p)
사물에 신비한 힘을 부여함으로써 드러난 경외감은 이를 통해 신께 나아가는 수단이 된다. 반면, 오락은 이를 통해 신으로 부터 멀리 떼어놓는 수단이 된다. (191p)
텔레비전은 추상적 관념을 머릿속에 전하는 게 아니라 화면에 비친 인물을 우리 가슴 속에 밀어넣는다. (192p)
종교도 얼마든지 오락적 형태로 변형될 수 있다는 말이다. (193p)
가장 큰 위험은, 예배가 텔레비전쇼의 내용이 된느 게 아니라 텔레비전쇼가 예배의 내용으로 자리잡는다는 점이다. (194p)
과학이나 자유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역시 계몽주의의 산물임을 상기해야 한다. (197p)
주장하는 말 대신 이미지로 표현한 상업광고로 인해, 소비자의 구매결정은 사실여부의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 호소에 근거하게 되었다. (199p)
따라서 TV광고는 단순한 심리요법이 아니다. 즉각적인 요법이다. (203p)
TV광고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생생하게 시각적 상징을 드러내는 강점이 있기에,
짧고 단순한 교훈이 바람직하다.
설명보다는 드라마가 훨씬 낫다.
즉, 문제에 대해 질문으로 되받기보다는 해답을 제시하는 편이 좋다는 뜻이다. (204p)
텔레비전은 조각난 정보를 이동만 시키지 취하하거나 체계화하지 못한다.
칼 쇼르스케는 "근대적 사고의 관점에선 역사가 점차 쓸모 없어졌기 때문에 그 관계 또한 지속적으로 냉담해져 왔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건망증으로 들썩거리는 걱정스런 시대를 재촉할까 우려된다... 미국인들은 24시간 전에 일어난 일은 잘 알아도 지난 6,000년 전이나 60년전의 일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어 보인다." (213p)
교실은 사회적 교제가 이루어지는 현장인 반면, TV앞은 사적 공간으로 남는다. (221p)
학교는 언어발달에 중점을 두지만, 텔레비전은 이미지에 집중하도록 강요한다.(222p)
사람들은 행동하는 대로 체득한다.
유발되는 행동습관대로 행하도록 가르친다. (223p)
배움에는 단계가 있으며, 참을성과 상당한 노력이 따라야 하고,
분별력과 발상력, 그리고 통찰력을 갖춘 인물이 되기 위한 과정.... 분투해야만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키케로는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을 허ㅕㄴ재의 압제상황에서 해방시키는 데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와는 반대로 자신을 현실에 적응시키기 위해 힘겹게 노력해야 하는 젊은이들에겐 교육이 즐거울 수 없었다. (226p)
TV시청이 학습효과를 뚜렷하게 향상시키지 못함은 물론 고도의 추상적 사고를 배양하는 데 있어서도 독서에 훨씬 못 미칠 가능서잉 높다. (233p)
문화적 풍조가 황폐화되는 방식에는 두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문화가 감옥이 되는 오웰식이다. 두 번째는 문화가 스트립쇼와 같이 저속해지는 헉슬리식이다. (237p)
텔레비전은 쓰레기 같은 오락물을 방영할 때 가장 쓸모있게 기능한다. (243p)
"멋진 신세계에선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 없이 웃고만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보고 웃는지, 왜 생각을 멈추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248p)
사람들의 짧은 주의력과 감성적인 콘텐츠를 선호하는 현상이 의미있는 공공담론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핵심주제 (261p)
이미지 중심의 보여주기식 선전물인 텔레비전(미디어) 라고 본인을 정의를 내렸다.
생각을 덜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내는 것을 일명 '밥친구'라는 신규 단어 나올 정도..
이해를 하지 않고 인식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보고 행동하는 것까지 미디어가 체계적으로 안내하지 않지만 그 뒤의 반응과 행동은 시청자에게 달려있다.
보이는 것에 끌려다니지 않고 인간이 항상 신뢰할 수 없는 존재이듯, 미디어에 보여지는 것들을 너무 믿지 말자.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고 성찰하고 점검해야 한다.
고로 생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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